매년 봄이면 대변항 앞바다는 멸치로 가득찬다. 멸치가 산란하러 내륙으로 붙기 때문이다. 흔히 회귀성 어류로 연어를 거론하면서 그 먼길을 되돌아오는 연어의 능력이 신기하다느니 난리다. 그러나 대다수 고기는 멀리 나가면 산란하러 고향으로 돌아온다. 명태도 그렇고, 조기도 그렇다. 멸치라고 다르지 않다. 대변항 앞바다는 멸치들에게 으슥하고 수온이 적당하며 아늑한 곳일 게다. 거기에 알을 슬러 오는 거다. 그물만 쳐두면 멸치가 왕창 잡혔다.
항구로 끌고 와서 털어 내는 것이다. 멸치는 빨리 털어야 한다. 날씨가 벌써 따뜻해지기 시작하고, 금세 부패한다. 성질이 급해서 빨리 죽는다 고들 한다. 성질이 진짜 급한지는 모르겠고, 헤엄치는 속도가 총알처럼 빠른 등 푸른 생선은 원래 그물에 막혀 속도를 제어당한 순간 죽어버린다.그게 숙명이다. 등 푸른 생선에는 특유의 효소가 있어서 부패를 촉진한다. 고등어나 정어리도 그래서 산 것을 볼 수없다. 양식한 게 아니라면 그물을 후리는 어부들의 손길이 무지막지하게 바쁘다. 멸치는 시간이 돈이다. 그렇게 턴 멸치는 온갖 용도로 팔려나간다. 요즘은 멸치회부침이나 찌개 같은 특산 요리를 많이 먹는다. 산지에서나 먹을 수 있다.
일본인들이 일찍이 개발한 멸치잡이 전진기지가 바로 거제도였다. 우리 멸치는 일본산에 비해 품질이 좋았고, 워낙 많이 잡혔다고 한다. 우리 멸치는 일본산에 비해 품질이 좋았고, 워낙 많이 잡혔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가난한 일본의 어민들을 이 바다로 이주시켜 고기를 잡게했다. 당시 조선은 목선에 돛대를 달고 그물로 멸치를 잡았다. 일본인들이 몰고 온 배는 동력선이었다. 그물도 저인망이었다. 우리가 뭔가 부정적인 의미로 쓰는 싹쓸이 저인망의 그 저인망이다. 바다 밑에서부터 싹싹 긁어버리는 저인망으로 우리 멸치 씨를 말렸다.
죽방렴으로 잡은 멸치는 그물로 잡은 멸치에 비해 스트레스가 적은 상태로 잡히기 때문에 비늘이 온전하고 모양이 좋다. 맛도 당연히 뛰어나다고 한다. 원래 죽방렴은 남해와 삼천포 등지에서 흔한 어구였다. 멸치만 잡는게 아니라 무슨 고기든 잡아내는 장비였다. 일본이 당시 첨단 설비의 배로 앞에서 싹싹 멸치를 훑어가면서 죽방렴도 시들시들해졌다고 한다. 멸치 한점에도 남아 있는 끈질긴 식민의 패악이다.
잡은 멸치는 일단 삶는다. 그러니까 마른멸치는 삶아서 말린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야 기름이 빠져서 부패가 되지 않고 맛이 담백해진다. 고로 우리가 멸치 육수에서 얻는 것은 기름기가 아니라 살과 뼈의 감칠맛이다. 예전에 통영 앞바다에 있는 섬 조도에 갔다가 멀리서 해변이 온통 은색으로 반짝이는 걸 보았다. 잡은 멸치를 삶아서 바닷가 돌 위에서 말리고 있었다.얼마나 피부가 온전한지 정말 은처럼 빛나는 멸치들이 눈부셨다.
그러나 이제 이런 광경은 거의 보기 힘들다. 배에서 바로 삶아서 항구로 들어오면 건조설비로 직행, 불을 때서 말려버린다. 우리가 먹는 멸치에서 낭만 같은 건 다 없어졌다. 당연한 일이다. 시골의 그 누가 해변가 돌 위에 멸치를 널고 뒤집고 말리겠는가.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사람도 없다. 그걸 요구하는 자가 있다면 미친놈이다.
봄에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장을 볼 때 노리는게 있다. 내가 아는 한 동료는 새벽부터 나가서 숭어알을 노린다. 알밴 숭어가 이때 많이 들어오는데 살점은 회로 뜨고 알은 따로 팔기 때문이다. 이것을 수집하는 게 그의 중요한 봄 노동이다. 그가 파는 숭어알은 남도의 명인이 만든 것은 아니지만, 이런 수고가 배경에 있다.
멸치를 노린다. 염장 안초비를 담글 놈을 찾는 거다. 우리가 먹는 안초비는 전량 수입된다. 700g짜리 한 병에 수만 원 한다. 비싸다. 봄에 올라오는 멸치로 직접 담그면 엄청나게 싸게 안초비를 담글 수 있다. 10kg 한 박스에 1만원 언저리다. 비늘 반짝이는 싱싱한게 걸리면 눈이 부셨다. 배를 따고 뼈를 발라 소금 쳐서 냉장한다. 나중에 건져서 오일에 담가서 안초비를 만든다. 별거 아니다. 요리 이름만 잘 지으면 된다.
어부가 오늘 새벽에 잡아온 싱싱한 멸치로 만든 수제 안초비 스파게티 2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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