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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맛과 건강

여름의 맛,잇몸에 달라붙어 혀에서 녹는맛 병어

by 라파의노래 2024.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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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어는 수산시장의 촉수 높은 전등의 빛을 받아 반짝반짝하다. 갈치는 언제든지 사람을 물어뜯을 것처럼 험상궂지만, 병어는 유순한 강아지처럼 고분고분하게 보인다. 병어의 눈망울을 보면 도저히 회칼을 들이밀기 어렵다. 다행스러운 건 병어가 산 채로 유통되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이다. 병어는 잡혀서 얼음이 가득 든 나무상자에 고단한 몸을 눕히고 있다. 작고 반짝이는 병어는 마치 별을 따다가 진열한 것처럼 보인다.

 

 

상인들은 작은 병어에는 세꼬시 감이라고 써서 붙여놓거나, 입으로 호객을 한다. 이봐 세꼬시 할 거면 다른 데 갈 필요 없어. 막 경매 뗀 거라 물에 다시 던지면 헤엄친다고  세꼬시 란 뼈 채로 썰어 낸다는 뜻의 세고시에서 유래한 일본식 요리 용어인데 그게 일본어인 줄 아는 요리사도 별로 없을 정도다. 한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세밀하고 고소하게 써는 법 이라고 대답했다.  아닌게 아니라 세꼬시는 작은 생선을 따로 살점을 회 뜨지 않고 그대로 가늘게 썰어내며, 뼈를 그대로 썰기 때문에 고소한 맛이 도드라진다.

 

 덕자병어는 두툼하고 넓적하다. 마치 책을 서가에 꽂듯이 세워서 차곡차곡 나무상자에 담는다. 그래서 그걸 정리하는 걸 보면, 그늘이 도서관 사서처럼 보일 때도 있다. 마치 책을 서가에 꽂듯이  세워서 차곡차곡 나무상자에 담는다. 크기에 따라 여러 마리의 덕자가 들어가는데 덕자 한 마리에 5만원에서 시세에 따라 8~9만원 정도 하는데 그게 열 마리 이상 들어간 상자라면 총액이 얼마겠는가 

 

 작은 병어는 조려서 애들 반찬을 하거나 세꼬시로 썰어서 술안주로 소주를 넘기는 데 좋지만, 덕자는 나름 다루는 솜씨가 있어야 한다. 마치 참치처럼 부위별 해체를 한다. 꼬리의 쫄깃한 살점, 등지느러미가 붙은 쪽의 담백한 살점을 내고, 뱃살은 기름지게 해서 회로 또 낸다. 이 뱃살은 한번 얻어먹으면 여간해서 다른 회를 못 먹는다. 살살 녹는다는 표현이 딱 맞는다. 하얗고 부드러우며 꼬순 뱃살이 입에서 녹아난다. 사람 입안의 온도 36.5도에서도 기름이 녹는 것 같다. 융점 낮은 기름인 것 같다. 우물우물 입에서 한번 굴리면 녹아버린다. 소설가 한창훈 선생이 구름 같다고 표현한 그맛이 아닐까 싶다. 병어는 영어로 버터피시다 버터처럼 살점이 연하고 부드럽다는 뜻이다. 익히지 않아도 덕자의 뱃살은 녹는다. 그리하여 내 몸과 마음도 녹아버린다.

 

 

시절에 따라 생선처럼 가시가 크게 변하는 것도 드물다. 한때 너무 많이 잡혀서 삽으로 퍼 담아서 사료로 썼던 정어리가 이제 시장에 나오기만 하면 값도 묻지 않고 사 가는 물건이 되었으며, 무한리필을 해주던 고등어가 금등어가 되었다. 비싸니 못 먹으니 

병어도 마찬가지다. 한때 병어는 가난한 자들의 술안주였다. 인천 사람들은 흔히 병어를 먹고 자랐다. 동인천 삼치골목이 생겨서 값싼 삼치구잉 막걸리로 배를 채우던 청춘이 있었다. 노동자들은 밴댕이골목에 가서 밴댕이와 병어로 주린 배를 채우고 술로 해갈했다. 그때 병어는 싸고 넘쳤다. 병어는 거의 사철 나오는 생선이었고, 맛도 좋았다. 값이 싸고, 내장은 적고, 대가리도 작아서 살점이 넓은 도대체 악덕이라고는 없는 멋쟁이였다. 차이나타운 앞, 언덕길이 시작되는 곳에 바로 밴댕이 골목이 있었고, 지금도 건재하다.

 

병어

 

여수는 초여름 병어가 제철이다 정치망 병어를 보러 갔다. 아침9시반, 물때 세 물, 청해수산의 정치망 어선이 힘차게 기관에 시동을 걸었다. 천천히 여수 돌산 앞바다인 가막만 바다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정치망이란 주로 연안에 그물을 설치하고, 고기가 들어오는 어도를 만들어 유인, 가두어서 어획하는 설비다.

 

길 잘못 든 밍크고래가 걸린 적도 있고, 돗돔이나 상아리, 참치 같은 큰 고기도 걸린다. 보통은 철 맞은 고기가 들어온다. 여수 항구에서 제일 잘나가는 게 병어다. 그러나 역시 어획량이 적어 값이 세다. 병어를 부르는 이름 아주 많다. 병치, 병어, 덕자, 덕대, 입병어, 독병어, 돛병어, 병치메가리, 그리고 크게 자란 병어를 덕자라고 부르는데 이는 지역 사투리다. 덕대는 종이 다른 것으로 제철 시기와 맛은 병어와 비슷하지만 미세한 차이가 있다. 분명 덕자와 덕대는 다른 종인데, 큰 건 종 불문하고 덕자, 어지간하고 작은 건 병어라고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커다란 병어가 썰린다. 아주 차진 놈으로 한 부위를 썰어준단다. 번쩍이는 회칼이 지나가자 갈빗살이라고 부르는 기름 가득한 살점이 우수수 도마에 떨어진다. 한점 입어 넣으니 솜사탕처럼 녹는다. 천천히 지방이 녹으면서 살점이 잇몸에 달라붙는다. 유리창도 아닌데 그러고선 혀에서 녹는다. 완전히 녹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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