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가난이라는 극한 상황에 빠지면 먹고살아야 해 가족은 어떻게 살아남지? 같은 생존 문제에만 집중한다. 뇌가 생존을 위협하는 터널 안에 갇히는 것이다. 이러니 뇌가 정상적으로 가동될 수 없다. IQ에서 필요한 수리 능력이나 인지능력은 거의 바닥으로 추락한다. 게으름도 마찬가지가 게을러서 가난한가 아니면 가난하기에 게으른가? 함부로 쉽게 규정할 주제가 아니다. 세계적인 의학저널 란셋은 최근 다양한 실험을 바탕으로 현금 자원을 통해 빈곤층을 빈곤하게 벗어나게 하면 더 열심히 노동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보도했다. 게을러서 가난한 게 아니라 그들을 가난의 울타리에 가둬왔기 때문에 게으른 것이다. 브레흐먼의 경제 철학은 신자유주의라는 지옥문을 연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의 한 마디에서 출발한다. 극악의 빈부격차를 유발한 신자유주의 출발은 가난은 인격의 결함이라는 대처의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대처는 가난을 철저히 개인의 무능 탓으로 돌렸고, 부의 축적은 그 사람의 우수한 인격 덕이라고 믿었다. 실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실제 우리 삶 속에서 이런 생각들은 꽤 널리 퍼져 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가난한 사람들은 뭔가 열등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가난한 것이라고 믿는다. 진보적 인사들도 가난의 해결을 위해 동정심에 호소하는 일이 잦아진다. 브레그먼은 이런 동정심을 매우 경계한다. 동정심은 빈곤을 제삼자 입장에서 아는 척하는 일일 뿐이다. 이런 시각은 빈곤을 멸시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빈곤 극복 심리 프로그램은 브레그먼이 가장 혐오하는 정책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자신감을 가지세요.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라고 백날 떠들어본들 아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잠시 잠깐 얻는 마음의 위안이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브레흐먼이 가난 문제를 대하는 자세는 매우 간결하고 본질적이다. 문제의 본질로 직접 치고 들어가자는 것이다. 전 지구적인 기본소득의 도입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냥 돈을 나눠주면 된다. 가난 극복을 위해 이보다 더 간결하고 명백한 해법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브레흐먼은 전 지구적인 기본소득 도입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입증하기 위해 민 컴 프로그램의 결과를 상세히 설명했다. 민 컴 프로그램은 1974년부터 5년 동안 캐나다 중부 마니토바주의 작은 도시 도핑에서 실시됐마니토바주 정부는 또 핀 시의 모든 모든 시민에게 1년 동안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입을 보장해 주는 정책을 실시했다. 일을 하건 안 하건 이 도시 주민들은 가정 구성원 숫자에 맞춰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입을 주 정부로부터 보장받았다. 요즘 돈으로 환산하면 4인 가구의 경우 주 정부로부터 1년에 평균 2000만원을 지원받았다. 민 컴 프로그램은 인류가 태어난 이후 가장 오랫동안 지속됐던 기본소득에 관한 소중한 실험이었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놀랍게도 도피의 청소년들이 훨씬 똑똑해졌다. 아이들의 학교 성적이 매우 향상되었다. 가정폭력이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주민들이 정신병원을 찾는 횟수도 압도적으로 감소했다. 민컴 프로그램이 도핀 시민들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만들었다. 보수주의자들은 복지에 대해 일을 안 하는데도 돈을 챙겨주면 누가 열심히 일하느냐고 비판한다. 사람들이 게을러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천만의 말씀이었다. 민컴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기간 노동 시간은 고작 남성 1%, 기혼 여성 3%, 미혼여성 5%밖에 줄어들지 않았다. 얼굴도 본 적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식량을 줄까? 교육을 고칠까? 이런 동정적 시선을 멈춰야 한다. 그리고 수많은 온정주의적 관료들과 학자들도 없애버려야 한다. 그럴 바에는 그냥 그 사람들이 받는 월급을 빈민들에게 나눠주라고 실로 본질에 접근하는 명쾌한 해법이 아닐 수 없다. 빈곤에 대해 떠들어대는 관료들이나 학자들 월급으로 기본소득을 주면 민중들은 알아서 건강해지고, 알아서 똑똑해지고 알아서 출산을 늘린다. 빈곤의 해결책은 빈곤 그 자체를 없애는 것이지, 뭔가 다른 복잡한 방법이 있는 게 아니다. 나의 꿈은 이것입니다. 내가 바라는 미래는 내 직업의 가치가 내 월급의 크기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고, 내가 전파하는 행복의 양과 내가 상대방에게 주는 의미의 양으로 결정되는 미래이다. 내가 바라는 미래 교육의 목적이 쓸모없는 직업을 준비하는 데 낭비되는 게 아니라 인생을 더 잘 살기 위한 것이 미래이다. 내가 바라는 미래는 풍요롭게 사는 삶이 특권이 세상이 아니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인 세상이다. 빈곤을 어떻게 없앨 수 있느냐에 대해서 우리는 이미 해답을 알고 있다. 우리에게는 연구 결과도 있고 증거도 있고 방법도 있다. 단지 우리가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경제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케인즈 혁명 (0) | 2024.04.22 |
---|---|
중상주의/애덤스미스와 국부론 (0) | 2024.04.11 |
버니 샌더스의 거대 월가자본과 맞선 용맹스러운 전사 (0) | 2024.03.03 |
로버트 스키델스키의 경제적 행복이란 ? (0) | 2024.03.01 |
로버트 라이시의 대항적 세력을 구축해 자본주의를 구하라 (0) | 2024.0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