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시작된 이래 주기적으로 닥쳤던 경제 공황은 우연이 아니라 매우 구조적인 현상이다. 자본은 극단적으로 노동을 착취했고, 착취의 강도는 점차 거세졌다. 그런데 그런 착취가 이어지면 사회는 어떻게 될까? 라이시는 자본주의를 구할 어떤 비책을 갖고 있을까? 라이시는 문제의 본질이 상위 1%가 소유한 힘이나 영향력 자체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대기업, 월스트리트, 부자가 소유한 정치적 힘은 원래 컸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상위층의 힘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힘을 억제하고 견제할 대항적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항적 세력의 힘은 부족하다는 게 아니라 아예 없다는 점에 있다. 라이시는 신자유주의가 시작된 이후 중산층과 빈곤층, 그들을 포함한 경제적 이익 집단에는 힘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대항적 세력이 전멸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라이시는 강력한 어조로 대항적 세력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대항적 세력이 구축되지 않아 적절한 힘의 균형이 이뤄지지 않으면 민중들은 결국 체제를 전복시키는 과격한 선택을 할 것이다. 그래서 대항적 세력의 구축은 자본주의 구하기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된다. 라이시가 말하는 대항적 세력이란 무엇일까? 라이시는 이를 매우 정치적인 방법으로 풀어낸다. 미국의 경우 공화당 vs 민주당이라는 양당 체제를 허물고 기득권층 vs 반체제 층이라는 새로운 대립 구도를 형성해야 한다는 게 라이시의 주장이다. 공화당에도 민중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월가와 기득권층에 반대하는 인물이 있고, 민주당에도 월가에 빌붙어 자본과 상위 1%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들이 있다. 그렇다면 괜히 정당을 기준으로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니 구분하지 말고, 범정치권 차원에서 기득권에 저항하는 대항적 세력을 구축하면 된다. 문제는 오랫동안 양당 독식 구조가 지속된 정치 지형에서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데 있다. 기존 정치 구도로 대항적 세력을 형성할 수 없다면,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한 민중들의 정치 세력을 새롭게 형성하자는 제안이다. 신자유주의가 40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상위층에 대항하는 세력이 전멸하다시피 했다는 라이시의 주장은 우리 사회에도 많은 생각할 주제를 던진다. 재벌이 지배해 온 한국 사회에서 자본의 폭주를 제어할 대항적 세력이 존재하는가? 라이시는 소비자는 풍요롭지만 피폐한 삶을 사는 이유를 신경제의 발전에서 찾는다. 신경제란 인터넷과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자본주의 시스템이다. 신경제는 살아남기 위해 공급자는 말도 안 되는 강도의 노동자에게 요구한다. 소비자로서 풍요롭지만 때문에 노동자로서 피폐한 우리의 모습을 라이시는 부유한 노예라고 불렀다. 신경제가 주는 여러 혜택은 더 필사적인 삶, 불안감, 빈부격차와 사회적 분화 현상의 심화라는 비용을 우리게 부담시킨다. 신경제가 대단한 것만큼이나 우리는 삶의 일부를 신경제에 빼앗기고 있다. 가족과의 삶, 우정, 지역사회 그리고 우리 자기 삶의 일부가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손실은 우리가 얻는 혜택과 함께 발생하고 있다. 이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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