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는 서구 사회에서 인문주의와 함께 성장한 개념이다. 세상의 중심은 오로지 신이라고 생각했던 폐쇄적 중세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을 중심으로 한 인문주의 철학이 등장한 것이다. 다시 말해 자유주의는 인간 중심의 사상이었고, 이 사상이 근대 시민혁명의 기반이 된다. 근대 시민사회를 연 자유의 철학적 개념은 나 스스로 나의 삶을 결정하는 데 있다. 기본소득 제도의 든든한 옹호자로 불리는 벨기에의 경제철학자 필리프 판 파레디스는 자신의 기본소득 철학 뿌리를 인간의 자유로부터 찾았다. 판 파레디스가 규정한 자유, 혹은 부자들이 재산을 축적할 자유를 자유 정도로 해석한다. 하지만 자유가 그런 것인가? 부자들의 사유재산을 철저히 보호하고 시장의 자유를 완벽하게 보장하면 민중들의 자유의지가 충만해질까? 천만의 말씀이다. 판 파레디스는 자본주의 역사가 민중들의 자유를 박탈해 온 과정으로 해석한다. 자본주의는 말로만 자유를 외치기, 그 자유에는 실질적 힘이 없다. 판 파 레이스가 출판한 책 기본소득의 교과서로 불리기도 한 책의 제목이 모두에게 자유를 인 이유가 이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민중들이 실질적 자유를 누릴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다. 삶을 선택할 만한 힘, 즉 자본에 대항할 교섭력이 없기 때문이다. 자본이 박탈한 실질적 자유를 회복하는 방법은 자본이 멋대로 설계한 우리의 인생을 되돌려 놓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말은 자본이 설계한 인생을 거부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본이 나에게 부여한 삶을 거부해도 나는 죽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어야 한다. 생존이 보장된다면 얼마든지 40세에도 인생 2막을 설계할 수 있다. 삶이 보장되면 청소년들이 충분한 고민과 경험 끝에 30세나 40세에 인생을 결정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조건을 달지 않고도 모든 민중에게 매월 일정한 소득을 국가가 지급하는 기본소득은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과정이고 민중들에게 교섭력을 높여주는 힘이 된다. 개인이 누리는 대부분의 풍요는 자기의 덕이 아니라 사회가 총체적으로 만들어낸 사회적 자산에 의해 결정된다. 그것을 누리는 사람들은 행운아고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불행이다. 그렇기에 행운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 그 행운은 보다 많은 민중들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야 한다. 이에 대해 판 파레디스는 높은 임금은 우리의 노동, 노력 덕분이 아니다. 한국이나 벨기에처럼 언제, 어디에 사느냐가 중요하다. 과거의 엄청난 기술적 진보와 자본 축적, 사회의 학습에 의해 혜택을 받는 곳에 살면 임금이 높고, 그렇지 못한 나라에서 살면 임금이 낮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100년 전보다 훨씬 많이 벌고, 인도 콜카타역행 나 콩고민주공화국 킨샤사 사람보다 많이 버는 이유다. 우리가 훨씬 더 열심히 일하거나 더 똑똑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많은 임금을 받는 것은 단지 이러한 렌트로부터 혜택을 받아서다. 그래서 기본소득은 어떤 이의 열매를 뺏어 모두에게 주는 게 아니다. 우리 소득에 들어 있는 과거로부터 받은 것을 더 공정한 방법으로 나누는 것이다. 자유의 기치를 높이 든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40년 가까이 살았더니 민중의 자유가 말살되는 황당한 역사를 우리는 경험했다. 그렇다면 인류에게 진짜 자유,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경제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버트 스키델스키의 경제적 행복이란 ? (0) | 2024.03.01 |
---|---|
로버트 라이시의 대항적 세력을 구축해 자본주의를 구하라 (0) | 2024.02.29 |
아마르티아 센의 악마는 꼴지부터 잡아먹는다 (0) | 2024.02.28 |
군나르 뮈르달, 부뿐 아니라 빈곤도 확대 재생산된다 (0) | 2024.02.28 |
윌리엄 베버리지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실행한 복지주의자 (0) | 2024.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