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스웨덴의 보석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진보적 경제학자 군나르 뮈르달이 선정된 것이다. 뮈르달과 함께 공동으로 상을 받은 이가 바로 우파 경제학자 중 악마적 거장으로 불리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였기 때문이다. 노벨경제학상은 가장 진보적인 경제학자와 가장 보수적인 경제학자 두 명의 손을 동시에 들어준 셈이다. 뮈르달이 학자로서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1938년 미국의 흑인문제를 연구한 미국의 딜레마를 출간하면서부터였다. 그는 이 책에서 미국 흑인들의 빈곤이 왜 끝없이 구조적으로 재생산되는지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줬다. 뮈르달이 제기한 핵심 개념은 누적적 인과관계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부는 확대 재생산되고 가난은 대물림된다고 여긴다. 문제는 이런 시각에 미묘한 오류가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보통 부라는 것이 단지 축적되는 수준을 넘어 확대 재생산된다는 사실을 대부분 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뮈르달은 자본주의의 현실이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더 처참하다는 것을 통렬하게 지적한다. 자본이 눈덩이처럼 부를 확대 재생산하는 것처럼 빈곤도 시간이 지날수록 눈덩이처럼 커진다는 이야기다. 뮈르달은 이런 현상을 누적적 인과관계의 결과 라고 설명을 한다. 그는 미국의 딜레마에서 흑인들의 빈곤을 이렇게 설명한다. 차별은 빈곤을 유발한다. 문제는 이 차별이 단발적으로 빈곤을 유발하는 게 아니라는데 있다. 차별과 빈곤은 원인과 결과로 반복적으로 작용하면서 점점 더 쌓인다. 가난하니까 차별을 받고, 차별을 받아서 더 가난해 진다. 이 끝없는 악순환에 빠지면 빈곤이 확대되는 일을 절대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이 뮈르달의 주장이었다. 이런 예를 들면 뮈르달의 누적적 인과관계가 훨씬 마음에 와닿을지 모르겠다. 놀라운 이야기지만, 아프리카의 최빈국 소말리아에는 해적이 산다. 정말로 해적이라는 존재가 있다. 우리도 이들 해적의 존재를 뼈저리게 경험한 적이 있다. 소말리아 해적이야말로 뮈르달이 지적한 누적적 인과관계에 의한 빈곤의 확대 재생산의 극단적 결과였다. 왜 소말리아 민중들이 해적질에 나섰는지 이유를 알면 우리는 결코 그들을 함부로 비난할 수 없다. 소말리아는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기능을 상실한 실패 국가로 분류된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에 따르면 소말리아는 줄곧 세계 실패 국가 분야에서 1위를 달렸다. 여기서 더 살펴볼 것은 소말리아의 지리적 특징이다. 아프리카 대륙 동부에는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불리는 뾰족하게 튀어나온 지역이 있는데 소말리아는 이 지역에 ㄱ자 모양으로 형성된 매우 긴 해안을 갖고 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소말리아 국민들은 해산물을 별로 즐기지 않는다. 이 나라에서 잡히는 해산물은 대부분 유럽으로 수출된다. 소말리아 민중들에게 해산물은 곧 식량과 생필품을 구입할 소중한 천연자원이라는 이야기다. 또한 소말리아는 수에즈 운하와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에 있다. 수에즈 운하는 한 해 평균 3만척 이상의 배가 다니는 교통의 요지다. 소말리아 민중들이 해적질에 나서게 된 원인을 제공한 자들은 비열한 유럽인들이었다. 소말리아의 치안이 엉망이라는 점을 노렸다. 해상 치안 자체가 없다시피 한 소말리아 앞바다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잡혀갈 우려가 없었다. 소말리아 해적은 이렇게 탄생했다. 해적질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소말리아 민중들이 해적질에 나선 원인은 그들을 끊임없이 빈곤으로 내몰고 그 빈곤을 악용해 이들을 더 착취하려 했던 유럽인들의 탐욕이었다. 뮈르달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자기 보정장치가 없기 때문에 누적적 인과관계의 모순을 결코 고칠 수 없다. 교육 여건의 개선과 복지혜택의 확대도 당연히 선행돼야 한다. 이래야 차별을 받는 이들의 빈곤의 확대 재생산이 멈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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