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인도의 벵골 지역에 극심한 기근이 들이닥쳤다. 태풍의 영향도 있었지만 대기근의 원인은 사실 당시 인도를 지배했던 영국의 엉터리 식량 정책 탓이었다. 이른바 벵골 대기근으로 불리는 이 참사에서 얼마나 많은 인도인들이 목숨을 잃었는지를 정확한 통계조차 나와 있지 않다. 이 참혹한 현실이 한창일 때, 벵골 지역에는 총명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한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굶어 죽는 수많은 사람을 직접 목격하며 왜 가난한 사람은 이처럼 평생을 가난하게 살다 죽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스스로 던진다. 그는 아시아 출신 최초의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위대한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이다. 굶주림과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연구한 셈의 결론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바로 민주주의 확립이다. 독립 국가에서는 독재자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독재자는 누구의 눈치 볼 필요가 없다. 권력이 견제받지 않으니 국민들의 삶을 걱정하지 않는다. 권력자는 원래 다음 선거에서 내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어야 굶주린 국민들을 돌보는 법이다. 민주주의 국가는 단 한 번도 기근도 겪은 적이 없다. 라는 말로 자신의 견해를 요약했다. 가뭄이라는 게 유독 에티오피아만 휩쓸고 갔을 리가 없는 거다. 가뭄이 국경 따라서 멈추는 게 아니지 않나? 그렇다면 왜 유독 에티오피아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을까? 반면에 보츠와나는 아프리카의 예외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보기 드물게 민주주의가 확립된 국가다. 보츠와나 정부는 대기근이 발생하자 주 수입원인 다이아몬드를 대거 내다 팔아 신속하게 식량을 수입해 국민들에게 분배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들을 돌보는 것은 곧 차기 선거를 대비한 훌륭한 전략이기도 하다. 보츠와나는 다이아몬드 같은 천연자원이 풍부하니 민주주의도 되는 것 아니냐? 라는 반론은 옳지 않다. 대부분 아프리카 국가는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아프리카의 천연자원이 아프리카 민중들에게 혜택이 아니라 저주의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가치 있는 지하자원이 발견되면 그 이익을 두고 군벌과 제국주의자 다국적기업들이 총질하며 싸운다. 지하자원이 많은 나라 민중은 더 가난해진다. 이를 경제학에서 자원의 저주라고 부른다. 이런 경제적 풍요의 기반이 바로 민주주의였다. 민주주의 국가는 단 한 번의 기근도 겪은 적이 없다. 셈의 장담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우리나라를 해석하는 셈의 관점은 다르다. 한국의 경제 발전은 박정희 독재적인 분이 아니라 박정희 독재에 끊임없이 저항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셈의 관점을 빌려 한국 경제를 이끄는 재벌들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자 재벌들은 완벽한 독재의 영역에 있는 존재들이다. 박정희가 마치 경제 발전을 이끌었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재벌들이 오늘날 우리를 이만큼 먹고 살게 해줬다는 헛소리가 설득력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분석이다. 박정희에 맞선 민중들이 경제발전의 원동력이었던 것처럼, 재벌이 아니라 재벌에 맞서 싸웠던 노동자들의 투쟁이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신에게 중요한 것은 평균이 아니라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삶을 사는 이들의 인생이었다. 모두가 인간의 기본권을 누리는 세상을 위해서는 평균치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얼마나 빈곤하게 살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센 빈곤지수라는 것을 개발해 실제 가난한 국민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빈곤지수는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소득을 올리는 이들의 비중이 전체 국민에서 어느 정도를 차지하는지를 계산한 수치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건 낮건, 빈곤지수가 높으면 그 사회에서는 최악의 가난을 겪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 된다. 이 수치가 높다면 뭔가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래야 함께 사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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