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겨울이라면 영국이 독일에 심각하게 전쟁에서 밀리고 있었을 때였다. 런던 시내에 독일군의 포격이 쏟아진 날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위험한 시기에 도대체 사람들이 무슨 책을 사려고 그렇게 서점 앞에서 애타게 기다렸던 것일까? 그 책이 바로 베버리지 보고서다 원래 제목은 사회보험 및 관련 서비스였지만 지금은 베버리지 보고서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진 책이다. 영국 국민들은 영국이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심각하게 독일에 밀리는 모습을 보고 점차 희망을 잃어갔다. 영국 국민들은 영국이 2차 세계대전에서 심각하게 독일에 밀리는 모습을 보고 점차 희망을 잃어갔다. 영국 국민들의 마음이 상한 것은 단지 불리한 전황 때문만이 아니었다. 가장 심각했던 문제는 국민들의 자존심이 무너졌다는 데 있었다. 영국이 점차 쇠락해 독일에 전쟁에서도 밀리는 지경이 됐다. 그리고 독일에 맞서는 연합국의 주도권도 신흥 강대국인 미국에 이미 빼앗겨 버렸다. 2등 국가로 전락한 영국 국민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졌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베버리지는 이 보고서에서 국가의 진보를 위해 반드시 사라져야 할 5대 악을 규정했다. 5대 악이란 바로 가난, 질병, 무지, 나태였다. 그렇다면 역사의 진보를 위해 이 5대 악을 없애야 한다. 가난을 없애려면 빈곤층에 대한 복지가 시작돼야 한다. 질병과 불결을 없애려면 국가적인 보건의료 체계가 확보돼야 한다. 무지와 나태를 없애기 위해서는 완벽한 공공 교육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이보고서는 국가가 국민들에게 완벽한 의료 및 교육을 제공하고, 모든 국민이 어떤 경우에도 빈곤에 빠지지 않는 강력한 복지 시스템을 설계해 나갔다. 무상의료나 가족수당 등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대부분 복지 시스템을 설계해 나갔다. 강력한 복지정책을 실시한 덕에 영국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즉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국가가 국민의 삶을 보호한다는 복지국가의 원조에 오른다. 베버리지 보고서 이후 유럽에서는 영국의 복지정책을 베끼는 게 하나의 유행이 돼 버렸다. 베버리지안의 철학은 전 유럽으로 번져나갔고, 유럽은 전쟁의 참상을 딛고 풍요로운 땅으로 재건됐다. 강력한 복지정책을 바탕으로 유럽은 1970년대 석유파동이 나기 전까지 영광의 30년이라는 엄청난 경제 호황을 누린다. 하지만 영국의 복지정책은 신자유주의 등장으로 대부분 깨지고 만다. 특히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마거릿 대처가 총리가 된 이후 영국의 복지정책은 박살이 났다. 그러나 아직 베버리지 보고서의 원본대로 영국이 고수하는 복지 정책이 하나 있다 영국 특유의 의료보험 시스템이다. 이 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자부심이 너무 강해서 대처 같은 강성 반복지주의자도 이 제도만큼은 건드리지 못한 것이다. NHS는 모든 영국 국민들이 무료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된 의료보험 시스템이다. 국민들의 치료비는 모두 국가에서 제공한다. 특이한 점은 영국의 의사들 또한 모두 국가에서 월급을 받는다는 점이다. 영국 의사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준 공무원 신분으로 활동한다. 모든 국민을 질병으로부터 구하겠다는 베버리지안의 신념이 아직도 영국에 남아 도도하게 흐르고 있는 셈이다. 영국 말고도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은 대부분 영국의 NHS와 같은 의료보험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베버리지 보고서가 너무 훌륭했던 덕에 수많은 나라들이 베버리지안의 사상을 적용해 복지국가를 만들려는 시도를 했다. 진정한 복지 국가는 국민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진심이 없다면 아무리 베버리지 보고서 같은 훌륭한 제도가 마련돼도 소용이 없다. 베버리지안의 이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좋은 제도와 함께 진심을 담은 복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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