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블런 효과 외에 부자들의 이상한 소비 행태를 분석한 경제학 이론으로 백로 효과가 있다. 베블런 효과가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를 지적한 이론이라면 백로 효과는 어떻게든 남들과 다르게 보이고 싶어 하는 속물들의 소비를 입증한 이론이다. 이 이론은 유대계 미국 경제학자인 하비 레이번 슈타인이 경제학 잡지에서 처음 소개했다. 속물은 고상한 체하는 사람, 혹은 잘난 체하는 속물이라는 뜻이다. 까마귀 노는 곳 근처에 가지 않는 거만한 백로를 빗대 '백로 효과'라고 부르기도 한다. 속물들은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목숨을 건다. 같은 명품이라도 속칭 개나 소나 다 갖고 있는 명품이라며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리 디자인이 구려도 이탈리아 장인 한 땀 한 땀 소중하게 만들었다는 운동복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남들과 다르게 보이는 게 왜 필요한지 정말 모르겠지만, 이 속물들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들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과시하는 데 집중된다. 그렇게 극소수의 로열패밀리에게만 시계를 공급해 온 회사가 창사 100주년을 맞아 드디어 일반인에게도 이 제품을 살 기회를 열어 주었고 이 브랜드의 개점 행사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연예인들이 대거 참가했다. 연예인들이 빈센트 앤 코 시계를 찬 모습은 인터넷과 패션잡지 등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몇 명의 연예인은 시계를 협찬받았고 몇 명은 직접 1억원대의 시계를 구입했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 로열패밀리만의 시계라니 한국의 속물들에게 이 시계가 얼마나 멋져 보였을지를 충분히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런데 말이다. 이 시계를 구입한 소비자가 수리를 맡겼더니 단 이틀 만에 수리가 완료되는 일이 벌어지면서 의심이 싹트기 위해 시작했다. 시계가 스위스까지 다녀오는 데에만 이틀이 넘을 텐데 이 업체는 너무 신속하게 수리를 마친 것이다.
한국 독작들이 사랑하는 작가 중 한명인 스위스의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은 저서 불안에서 이 속물근성을 통렬히 파헤쳤다. 알랭 드 보통에 따르면 불안은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람의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기 위해 시작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종전과 다른 완전히 새로운 불안의 영역에 들어섰다. 내가 돈을 많이 벌었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불안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은 속물근성을 불안의 매우 중요한 원인으로 꼽는다. 그에 따르면 속물근성을 가진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 민중들과 다른 사람이라는 걸 과시하려고 한다. 애정 결핍이 불안의 또 다른 원인으로 꼽았다.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사람일수록 명품을 두르지 않으면 불안하다. 알랭 드 보통은 속물의 역사는 탐욕의 역사가 아니라 상처의 역사다 하고 통찰한다. 그러니까 속물근성으로 가득 찬 졸부들 앤 코 시계를 1억원에 산 사람들을 너무 한심하게 생각하지 말자 사람들을 알고 보면 불쌍한 사람들이다. 식당에서 반말로 노동자들을 종 부리듯 하는 사람들은 알고 보면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사람들은 허세로 애정결핍의 상처를 감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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