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17년 겨울, 서울 한복판 시청 광장 인근에서는 이른바 탄기국 집회라는 것이 열렸다. 베블런은 19세기 미국 경제 체계를 신랄하게 비꼰 유한계급론을 1899년 출간하면서 학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지금도 유한계급은 베블런의 트레이드마크처럼 통용되는 경제학 용어다. 주의할 점은 유한이란 단어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무한의 반대말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한계급은 한가한 계급, 한마디로 놀고먹는 계급을 뜻한다. 베블런은 자본주의만 아니라 인류 역사에 기록된 야만적인 지배자들을 모두 유한계급이라고 칭했다. 베블런이 보기에 자본주의의 유한계급은 생산에 전혀 종사하지 않으면서 자본이 안겨주는 자본 이득으로 부를 누리는 자들이다. 그런데 베블런은 유한계급의 존재에서 매우 중요한 경제학적 사실을 한가지 추출한다. 바로 이 한량들이 과시적 소비를 한다는 사실이다. 경제학 교과서에 베블런효과로 기록된 이 이론의 요지는 이렇다. 유한계급은 필요에 의해서 소비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기가 힘든 노동을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놀고먹을 정도의 재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 말도 안 되게 비싼 제품을 기꺼이 사들인 뒤 폼을 잡는다. 베블런은 이를 과시적 소비라고 부른다. 베블런은 이런 과시적 소비 탓에 특정한 사치재의 경우 가격이 오를수록 오히려 수요가 늘어난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런데도 놀고먹는 유한계급은 비싼 가방일수록 더 많이 사들인다. 베블런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가격이 올라도 수요가 되레 늘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수요의 법칙이 만고불변의 과학이라고 믿었던 경제학자들은 베블런의 주장에 어쩔 줄 몰라서 당황했다. 게다가 베블런에 따르면 베블런 효과는 단지 몇몇 유한계급에서 벌어지는 예외적 일탈이 아니었다. 이들은 세상의 지배자였고 과시적 소비를 뽐내고 다녔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들을 따라 했다. 결국 수요는 가격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인다고 믿었던 신고전학파 경제학은 베블런의 탁견에 전제 자체가 무너지기 위해 시작했다. 베블런의 통찰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부자들에 대한 세밀한 관찰을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서도 이어갔다. 베블런에 따르면 부자들은 당연히 정치적으로 보수파가 된다. 베블런은 유한계급은 생활 습관이건 사고 습관이건 변화 자체를 싫어한다. 지금이 가장 행복하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 현실이 그렇다. 진보를 위해서는 주변을 돌아보고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먹고 살길이 막막한 사람들은 그런 고민을 할 시간이 없다. 그리고 철저히 체제에 순응해야 한다. 찢어지게 가난할수록 시키는 일에 순응해야 그날 일당이라도 받는다. 이런 사람들에게 진보에 대한 고민은 사치다. 세계적으로 선거를 해보면 보수파를 지지하는 주요 지지층이 빈곤 계급이라는 사실은 베블런의 통찰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안타깝게도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베블런의 해답은 분명치 않다. 베블런은 유한계급을 격렬히 조롱했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고 믿지 않는다. 노동자 계급에 대한 신뢰도 별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명쾌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의 업적을 깎아내릴 이유는 없다. 그는 과학을 자처하며 수요의 법칙이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주장했던 고전학파의 가장 중요한 전제를 뒤흔들었고 우리 사회에서 왜 빈곤층이 체재에 순응하는 자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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