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권한을 강화해서 시장을 제어하고, 부자와 기업들로부터 세금을 더 걷어 이를 적절히 분배함으로써 경제를 선순환 시는 그 복지주의를 뜻하는 게 아닌가? 당연히 그 누군가가 케인스주의를 자처할 수 있다. 케인스주의는 지금도 자본주의의 경제학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학문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모두 케인스주의자라고 선언한 인물이 공화당 출신 미국 대통령 리차드 닉슨이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전통적으로 공화당은 부자 감세를 추진했고 시장의 자율을 절대로 훼손하지 않는 자유주의의 전통을 지닌 정당이다. 그런데 그 공화당의 수장이 케인스주의자를 자처했다. 케인스의 위력이 복지주의의 위용이 당시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짐작게 한다. 소득 주도 성장론의 원조쯤 되는 케인스는 자본주의 경제학의 역사를 바꾼 인물이었다. 그는 자본주의 타도를 기치로 내걸었던 마르크스와는 완벽하게 다른 길을 걸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자신의 모순에 의해 붕괴할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케인스는 자본주의를 얼마든지 고쳐 쓸 수 있는 제도라고 확신했다. 만약 극한적인 계급투쟁이 발생한다면 나는 자본가 편에 서겠지만, 가능하면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가난한 계급을 먼저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소득 주도 성장론을 이야기하면 좌파니 빨갱이니 하는 험악한 우파들의 욕설이 쏟아진다. 그런데 이들에게 정말 해주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 소득주도 성장의 원조는 케인스고, 케인스는 자본주의를 사회주의 혁명의 위기로부터 구한 인물이다. 역사적으로 모든 경제 위기와 공황은 공급과잉이라는 현상에서 비롯했다. 기업이 생산하는 물건은 산더미처럼 쌓여 가는데 그 물건이 팔리지 않을 때 경제는 뿌리부터 흔들린다.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처참했던 경제 위기는 1930년 벌어졌던 대공황이다. 이 대공황의 원인도 공급과잉이었다. 대공황은 모든 것을 뒤엎어버리는 거대한 재앙이었다. 공급이 과잉 상태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물건의 가격이 떨어져 수요가 증대할 것이라는 자본주의 경제학의 기초 논리가 박살이 났다. 노동자의 임금은 3분의 1로 주저앉았다. 국민 소득의 70%가 사라졌고, 공산품 생산도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전 세계 무역 거래량은 대공황 직전에 비해 30% 수준으로 감소했다. 물건이 안 팔리니 공장이 망하고 망하니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더 빨리 사라졌다. 이 여파로 국민들이 가난해지니 물건이 더 안 팔렸고, 공장도 더 빨리 망하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대공황은 인류 역사상 경제적으로 가장 처참했던 시기였다. 대공황이라는 처참한 사태를 지켜본 케인스는 기존의 경제학을 사정없이 비웃었다. 그는 경기 침체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간단한 해법을 제시했다. 케인스는 공급, 즉 기업을 중심으로 운영됐던 경제학의 틀을 완전히 바꿨다. 그는 기업이 아니라 소비자를 공급이 아니라 수요자를 중심으로 경제의 틀을 재편할 것을 권했다. 빈 병에 돈을 넣어서 탄광에 묻은 뒤 나눠주라는 그의 주장은 경제의 핵심이 생산이 아니라 분배에 있다는 장엄한 선언이었다. 이런 케인스의 말에 귀를 기울인 지도자가 등장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32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루스벨트는 케인스의 말대로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의 역할을 극대화했다. 유명한 뉴딜정책이 자본주의의 구원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루스벨트는 댐을 짓고 도로를 건설하는 등의 방식으로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최저임금제를 도입했고 사회 복지 정책도 강화했다. 이런 정책들은 단순히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인도적 차원에서 벌인 일이 아니었다. 정부가 국민들의 호주머니에 돈을 채워줘야 경제가 돌아간다는 케인스의 철학을 실행에 옮긴 것이었다. 정부의 주도 아래 부의 재분배가 이뤄지면 중산층의 두께가 두꺼워진다. 한국 경제의 고질적 문제점인 극심한 빈부격차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는 셈이다. 한두 해 반짝하고 마는 복지정책이 아니라 100년을 내다보는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 그래서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은 성공해야 한다. 이는 경제의 틀을 성장이나 수출이 아니라 분배로 바꾸는 첫 단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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