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에 설치된 공동 시계가 유럽의 새 시대를 알리는 시대를 알리는 상징이었다면, 스톱워치는 미국의 새 시대를 알리는 상징이었다. 경제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제레미 리프킨이 남긴 말이다. 스톱워치가 미국의 새 시대를 열었다고? 스톱워치가 뭐라고 리프킨 같은 대학자로부터 이런 칭송을 듣는다는 말인가?
리프킨의 이 뜬금없는 스톱워치 찬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0세기 이후 자본주의에 일대 변화를 가져온 테일러 시스템을 알아야 한다. 테일러 시스템은 미국의 경영 컨설턴트였던 프레더릭 테일러에 의해 개발된 새로운 노동 관리 기법이었다.
테일러는 공장 노동자들을 어떻게 굴려야 가장 효율적인 결과를 낳는지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철강이라는 회사에서 놀라운 실험을 시작한다. 이 공장 노동자들은 주로 무쇠를 운반하는 일을 했는데 테일러의 관찰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한참 무쇠를 나르다가 지치면 쉬고, 또 한참 나르다가 지치면 쉬는 행동을 반복했다. 이렇게 노동을 한 노동자들은 대부분 점심시간 무렵 지쳐서 뻗어버렸다. 테일러는 노동 방식을 바꾸는 실험을 했다. 노동과 휴식 시간을 나눈 뒤 정교하게 노동과 휴식을 반복도록 한 것이다. 다양한 실험 끝에 테일러는 마침내 정답을 찾았다. 노동자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굴리는 조합임을 발견한 것이다. 테일러에 따르면 이 조합을 사용할 경우 노동자들이 운반하는 평균 무쇠 양은 주먹구구식으로 운반 할 때 비해 무려 3배 이상을 기록했다. 테일러의 주장이 알려지면서 스톱워치는 단번에 자본주의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자본가들은 너도나도 스톱워치를 손에 쥐고 1분 1초 단위로 노동자들을 관리했다. 사람들은 테일러 찬양했고 테일러의 이런 주장은 과학적 경영관리 이론으로 추앙받았다.
테일러 시스템이 과학으로 격상되는 동안, 인간은 스톱워치에 완벽하게 통제되는 자원으로 격하됐다. 이 시스템에서 전통적 의미의 인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그저 석유나 밀가루, 톱니바퀴나 컨베이어벨트처럼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자원이나 부품일 뿐이다. 수많은 경제학자가 있었지만 카를 마르크스처럼 근현대 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 경제학자는 단언컨대 한명도 없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낱낱이 파헤쳤고, 자본론이라는 명저를 통해 분석해 나갔다. 자본론은 성경책 다음으로 많은 언어로 번역된 책이다. 또 마르크스는 영국 공영방송 때 발표하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미친 100인 표에서 빼놓지 않고 1위에 오르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남긴 수많은 업적 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철저히 소외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뜨거운 애정을 보였다는 데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가 꿈꿨던 세상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해방되는 세상이었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부품화되는 세상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모습과 자격을 되찾는 세상을 꿈꿨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인간이 인간의 자격을 박탈당하는 현상을 마르크스는 인간소외라고 불렀다. 마르크스의 눈에 비친 자본주의 한마디로 인간을 인간으로부터 소외시키는 체제였다. 오로지 자본과 공장이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한 완벽한 수단에 불과했다. 노동자들은 노동하는데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 수 없다. 자신의 목표와 의도를 가질 수도 없다. 노동을 통해 행복을 느낄 수도 없다. 경영이 악화하면 자본은 노동자부터 해고한다. 왜 해고를 당해야 하는지 아무리 물어도 너는 그냥 쓸모가 없다는 답밖에 없다. 자본은 이처럼 인간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법인은 반드시 살려야 하는데 자연인은 아무리 죽어도 눈 하나 꿈쩍하느냐고 하지 않는 이상한 세상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 대신 출산 주도 성장을 하자고 제안했다. 마르크스가 노동자라는 인간의 존재를 경제학의 중요한 한 축으로 높여 놓았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마르크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노동자들은 그저 자본가가 주는 만큼만 받고, 하루 14시간 이상 죽도록 일하면서도 체념하며 살아야 했던 부품과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마르크스 이후 노동자들은 생존할 권리, 인간답게 살 권리를 가진 존재로 인식하게 시작했다. 많은 노동자가 인간성을 박탈당한 채 부품처럼 사는 처참한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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