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나 선입견이 이렇게 무섭다. 아나키스트의 대부로 불리는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은 그가 남긴 방대한 학문적 업적에 비해 한국에서 다소 박한 평가를 받는 불우한 학자다. 산업혁명이 시작될 무렵 수많은 진보적 사상가가 프루동으로부터 영감을 얻었지만 유독 한국에서 그의 이름은 좀 허접하게 알려져 있다.
프루동이 한국 지식사회에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은 1980년대 이후이다. 당시 한국의 진보 운동진영에서는 카를 마르크스의 사상이 대유행할 때였다. 문제는 당시 한국에 여러 사상이 들어오는 경로가 실로 협소했다는 점이다. 사회주의는 물론, 그와 비슷하기만 한 사상도 한국에는 진입 자체가 불가능했다. 예를 들어 지금은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책이 됐지만 에드거 스노의 명저 '중국의 붉은 별'조차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구할 수 없었다. 프루동은 마르크스의 초창기 사상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 선배 사상가였다. 1809년에 태어난 프루동은 1818년생인 마르크스에 비해 아홉살 선배였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키면서 선배였던 프루동의 생각과 거리를 두기 위해 시작했다. 마르크스는 프루동의 사상이 과학적 사회주의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마르크스가 프루동을 비판하며 쓴 책이 '철학의 빈곤'이다. 책 제목이 철학의 빈곤인 이유는 이 책 프루동의 저서 빈곤의 철학을 비판하기 위해 작성됐기 때문이다. 프루동의 책 빈곤의 철학을 단어 순서만 바꿔 철학의 빈곤으로 되치기한 셈인데 이는 마르크스가 프루동을 야유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충분했다. 프루동이 한국에서 박한 평가를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은 사람이 프루동 하면 '마르크스로부터 철학이 빈곤하다고 조롱을 받는 학자' 정도로 기억한다. 물론 평가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학문적 위상으로 볼 때 프루동은 철학이 빈곤해서 마르크스한테 욕이나 먹은 학자로 폄훼될 만한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프루동이 마르크스에게 조롱당할 무렵 마르크스는 아직 무명의 신예였다. 반면 프루동은 소유란 무엇이냐는 책으로 일대 충격을 몰고 온 유럽 지성계의 슈퍼스타였다. 그리고 프루동은 사유재산에 대해 누구보다도 뛰어난 견해를 남긴 위대한 경제학자이기도 했다. 자연권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인 1789년 인권선언에서 공식화됐다. 중세 봉건왕조를 무너뜨린 프랑스의 자본가 계급은 자신들의 권리를 만천하에 공표하기 위해 인권선언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유, 평등, 소유, 안전 등 네 가지 권리는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자연권'이라고 선언했다. 자연권이란 그것이 왜 시민의 권리인지를 증명할 필요조차 없는 당연한 권리라는 뜻이다. 법을 만들 때도 자연권은 별다른 논거를 댈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자본가들은 자유, 평등, 소유, 안전을 자연권이라고 선언했다. 이 중 자유는 자연권임이 너무나 명백하다. 신이 사람에게 부여한 자유는 인간끼리 사고팔 수도 없고 소유할 수도 없다. 프루동에 따르면 땅을 사유재산이랍시고 소유하는 짓은 도적질이다. 그런데 대해 프루동은 사회주의자에 가까운 무정부주의자인 데다가 너무 과격한 인물이니 동의 할 수 없다. 고 반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소유가 인정돼야 하고, 어느 정도의 소유는 제한돼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다. 이 새로운 지적 토양이야말로 연대와 협동의 공동체를 여는 기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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